아쉬운대로 산악스키
누구나 산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산악스키에 대한 동경 혹은 관심이 없지 않을 듯 하다.
일단 그럴 듯 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등반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리하여 나름대로의 산악스키(비브람에 알파인스키)로 어거지 활강도 한번쯤은 해봤을 테고,...
스키는 기본적으로 활강능력이 없거나, 활강이 가능한 설사면이 없으면 뭐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스키장을 멋지게 다운힐하는 친구들을 보면, 진짜 부럽기도 하고, 밥만 먹고 스키만 타고 싶은 욕망이 솓아오르기도 하지만, 겨움철 얼음을 찾아 돌아다니는 주말 산악인에게는 그저 어정쩡한 패러랠에 만족할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는 산에서 한번 써먹어보려하지만... 결국 이게 아니구나하고 걷어치우는게 다반사!
우리나라 여건에서 스키등반 및 활강을 한다는 건 거의 장난하거나 개고생하다 마는 비효율적 방식일 것이다. 적설상태도 열악할 뿐만 아니라, 활강 또한 왠만한 다운힐 실력이 아니고서는 감당해내기 어려운 조건이 대다수이며, 그런 다운힐실력이면 굳이 어거지 활강을 할 이유가 없다, 땀 안내고 멋지게 뽐 낼 스키장이 있는데 뭣 때문에 산속에서 헛짓거릴 하겠나...?
결국 산악스키의 본연의 의미는 퇴색되어, 스키장이 아니면 그 언저리를 맴도는 반쪽짜리 액티비티가 되어버리는게 지금 내가 즐기고 싶은 산악스키의 현주소인 듯 하다.
그래서, 좀 더 현실적인 스키투어링 방식이 필요하다. 이른바 ‘임도스키(Forst-Road Ski Touring)’다.
자전거를 타거나 오프로드를 즐기는 사람들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임도가 얼마나 다양하고 잘 닦여있는지 알 것이다. 애초부터 산사면을 따라 차량이동이 가능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사도가 25%(15°도)미만이며, 차로폭 또한 4.0m전후라 웬만한 다운힐실력이면 충분이 활강이 가능해진다.
따라서, 적설량만 일정정도(약15cm) 이상이면, 스키장같이 오만군상으로 번잡하고 쉽게 체득되지 않는 자세에 신경쓰느라 유쾌하지 못한 다운힐스키가 아닌, 자연을 고스란히 느끼며 묵상에 잠길 수 있는 자유로운 스키투어를 즐길 수 있다.
누구도 밟지 않은 자연설 위를 슬며시 지나간다는 건 너무도 상쾌하고 즐거운 경험이다.
보통 산악인들이 혀를 내두르며 애를 먹는 신설 러셀같은 개념이 아닌, 전인미답의 신천지를 발견하고 그 위에 처음 족적을 남기는 아주 신선한 느낌 바로 그것이다.
주말 산악인에게 겨울은 그리 길지 않은 계절이다. 얼음을 제대로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기에, 스키 어쩌구저쩌구 하는 건 너무 큰 사치일 수도 있겠다. 진짜 백수건달에 돈이 많지 않고서야 어찌 이 많은 액티비티를 다 섭렵 아니면 찝적댄단 말인가...?
보통 산에 다닐 적에 술만 먹으면 하던 얘기가 바로 ‘토탈클라이머’였다.
(등반가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등반행위라나 어쩌다나...)
하지만, 개인의 성향과 어울리고 더 효율적인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 대부분 한 분야에 매진하게 된다. (나는 등반파, 너는 워킹파. 제는 먹자파.... 아니면, 아마저도 시간내기가 힘들어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일상파!)
많은 90년대 학번들은 일과 가정을 지켜내느라, 맘속에 잠자고있는 ‘토탈클라이머로서의 나’를 잊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무료한 일상에 회상할 무언가를 조금씩은 축적해야 할 때다, 바로 지금이...
등산이라는 범주에 포함된 수많은 방식 가운데 하나가 산악스키라면, 지금 소개하는 임도스키도 꽤나 현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방법일 것이다.
누구 같이 놀 사람 있으면,
손을 들어주시실...
- ‘94 이성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