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동료들이 묻는다..."요즘 왜그리 싱글벙글이냐"고.

설악산을 생각하면 소풍을 기다리는 애들처럼 마냥 즐겁기만 하는가 보다.

올해는 예년과 달리 본대가 일요일 당일로 움직이기에 상대적으로 등반팀은 여유가 생겼다.

천화대리지팀, 워킹팀, 4인의우정길팀 이렇게 세팀이 꾸려졌고,

천화대리지팀은 금요일 아침에, 나머지 두팀은 금요일 저녁에 출발하기로 한다.

꽤 많은 비가 내릴거라는 예보에도 우리의 등반일정은 거리낌없이 줄곧일 뿐이다.

<천화대리지>

"남이와 함께 천화대 끝까지 갑니다~"를 외치던 재걸이형은 회사사정으로 설악산의 'ㅅ'자도 못보고 불참한채 형수형과 남이형 그리고 현주 셋이서 간혹 떨어지는 이슬방울을 맞으며 설악으로 출발한다.

설악산 입구에서 곰치국으로 늦은 아점을 먹고 1시경 천불동 공단초소에 도착하니 "비가 많이 온다는데 이시간에 어딜가냐"고 묻는 공단지킴이께 "비오면 금방 내려오겠다"는 뻔한 소리를 했더니 돌아오는 얘기가 가관이다.

"배낭을 보니 딱봐도 비박할 작정이구만 뭐...사고만 나지 마세요~"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2시가 넘어 1피치에 도착하였고, 이무렵 시작된 비와 함께 본격적인 물바위를 시작했다.

2피치에 올라서자 제대로된 장대비가 쏟아졌고, 형수형은 아래에서 외치신다 "현주야~비가 너무 많이온다. 내려가자~~"

비는 이미 우리 계획속에 있었기에 문제될게 없다.다만, 불편함을 줄 뿐...

그때부터 다음날 7시까지 쉼없이 쏟아지는 폭우에 우리는 생쥐가 되었다.

빗물을 머금어 두배이상은 무거워진 자일을 수시로 풀고 사리는 작업은 웬만한 중노동보다 상급이다.

빗줄기의 기세가 등등해질수록 우리들의 체력과 전의는 점점 쪼그라들 수 밖에 없었다.

체력이 방전될 무렵인 7시경 5봉아래의 안부를 비박지로 삼고 진지구축에 나섰다.

비닐과 판쵸의로 지붕을 올리고 서까래는 이리저리 자일로 엮어보지만 쉴새없는 비에 자꾸만 지붕이 쳐진다. 겨우겨우 하늘을 가리고 드뎌 식사시간...

빗물을 받아 햇반을 데피고, 그 물은 다시금 일회용 육개장이 된다.

오리로스 안주에 4홉들이 소주병은 자꾸 쫄아만 들고, 결국 2홉이 남을무렵 빗물 칵테일로 다시 4홉을 만들었다.

운치라는 것도 내몸이 뽀송하고 편안할 때 느껴지는 법...어서 아침이 왔으면 ㅎㅎ

두 형들은 사방에서 들이치는 빗방울 세례에도, 젖을대로 젖은 물침낭 속에서도 코를 골며 숙면중이다.

몇시나 되었을까...어색함과 답답한 기운에 눈을 떠보니 누워있는 얼굴 바로위까지 고인 빗물에 못이겨 비닐지붕이 내려와 있다. 고인 빗물을 쳐내지 않으면 비닐지붕은 곧 찢어져 우리모두 전신샤워를 할 판이고...잘못쳐내면 누워있는 내자리가 물길이 될 판이다.

잠시후, 지붕은 가벼워졌으나 나는 물을 가득 머금은 침낭속에서 뜬눈으로 아침을 기다리게 되었다.

5시가 되자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6시가 되자 물안개로 온통 하얗다. 다행이다.

누룽지와 커피로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전열을 정비해 본다. 자일 익사..침낭 익사..의류 익사..

식재료를 그토록 소화했건만 배낭의 무게는 오히려 훨씬 무거워졌다. 몸은 더 무거웠다.

어제 빗물을 과음한 남이형은 아침부터 이구역 저구역을 넘나든다. 탈이 난 것이다.

합의할 것도 없이 오늘 종착지는 왕관봉까지로 암묵적 동의...

언제 그랬냐는 듯 8시가 넘자 강렬한 햇살이 안개를 뚫고 나왔고, 좌측의 잦은바위골과 우측의 설악골에서는 쉴새없이 하얀 용들이 오르내리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장가계가 이보다 아름다울까...

6봉에 올라 우리는 침낭을  포함한 모든 젖은 것들을 내다 말리는 여유를 부렸다.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오늘 나는 천화대의 그 꽃을 볼 수 있었다. 여유가 준 선물이다.

사선크랙 정상에 서니 워킹팀이 왕관봉에서 소리치며 반겨주신다.

왕관봉을 어루만지며 희야봉과 범봉에게는 다음을 기약하며 하강을 시작한다.

밤새내린 비는 곳곳에 절경의 폭포를 이루며 힘차게 설악골짜기를 진동한다.

거풍의 여유도 즐기며 소공원에 도착하니 어느덧 둘째날의 태양도 벌써 지고 없다.

동명항 활어센터에서 시원한 거품맥주와 회로 즐거웠던 설악의 밤을 마무리 한다.

* 천화대리지: 김형수, 김남, 임현주 회원

* 워킹: 송진섭, 황원규(+3), 문명도, 최창학 회원

* 4인의우정길: 김한식교수님,김영배, 강경태, 김현경, 김동현 회원, 최채운(재학생)

<7월3일>

초당순두부로 아침을 먹고 10쯤 소공원으로 향하니 7시경 서울을 나선 본대 버스가 벌써 도착해 있다.

장보현교수님내외분, 한균달형님(이하 호칭생략),이세연,장태호(+1),황종하,유세현,염재훈,이명진,조영환,박찬중,송계영,김용현,주양숙,권미민,김창원,이태구,김승배,남기칠 회원 등 반가운 얼굴들과 인사를 나눈 후 설악골로 향했다. 참, 어제 오후 서울에서 스쿠터를 타고 온 안주환군도 함께...

설악골에서 먼저가신 악우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 준비해간 간단한 요깃거리와 함께 이들을 추모한다.

2시경 아야진항에 들러 점심을 거나하게 들고, 4시가 채 못된 시각 아쉽지만 서울로 향한다.

저녁 9시, 무사히 서울로 입성하였고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장보현교수님과 김한식교수님의 찬조금 매번 감사드립니다.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턱을 쏴주신 송진섭형님 고맙습니다.

행사를 위해 수고해주신 회장님이하 집행부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